작성일 : 2003-11-26 00:00
이름 : 관리자
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우리 가족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. 그 사고로 나는 두 개의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.나보다는 덜했지만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다.나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 시달렸다.
내가 밥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, 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아빠였다.
아빠는 나와 꼭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아픔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.
아빠의 사랑으로 나는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했다.
대학 입학식 날, 아빠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.
입학식을 끝내고 나올 때였다. 눈 앞에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. 차도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.
그런데 내 눈 앞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. 아빠가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.
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.
"아빠?...." 나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버렸다.
"엄마? 엄마도 봤지? 아빠 걷는 거......"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. "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.
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어.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. 그 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.
그런데 사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.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아픈 너를 위로할수 있다고 말야.
"왜 그랬어? 왜 아빠까지....."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. "울지 마. 아빠는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...
오늘은 그어린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봐." 앞서 걸어가는 아빠를 보고 있는 나의 분홍색 파카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.
마음이 아픈 날이면 나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 울었다.
그때마다 소리내어 운 것은 나였지만 눈물은 아빠 가슴속으로 더 많이 흘러내렸다.
(이철환의 "연탄길" 중에서)